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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독일, 베를린/독일, 취업_회사생활

독일 취업, 독일 건축(공간디자인)회사 면접 이야기 2

by 베를리너린 2020. 9. 19.

독일이란 나라로 워킹홀리데이를 오기로 계획한 후, 1년을 어떻게 보낼까 계획해봤습니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1년을 보낼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는 취업에 성공하는 것이었죠.

 

당시 전, 한국의 5년제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아뜰리에 경력 2년, 공간디자인회사 경력 2년을 갖고 있었습니다.

몸담고 있던 공간디자인회사에서 국제전시/박람회 프로젝트에 주로 참가하면서 종종 해외출장을 다니곤 했었죠.

건축, 인테리어, 전시 등 경험했던 프로젝트들 중 가장 재미나는 일이 전시/박람회였기 때문에 독일에서도 이쪽 업계에 지원해보고 싶었습니다.

 

영어는 유창한(?) 정도였고, 독일어는 열심히 독학해서 B1까지 통과해놓은 상황이었습니다.

 

큰 전시/박람회들은 워낙 국제적으로 이루어지는지라 독일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팀장급이 아닌 이상은 프로그램을 잘 다루면 하는 일에 있어서 언어가 큰 장벽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도면 치는 거야 나라별로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나... 하는 마음이었죠. (많이 다름)

 

 

 

살 곳을 먼저 정하지 않고, 독일 전역을 돌아가며 면접을 보곤 했습니다.

 

독일에 처음 와서 두 번째로 본 면접 후기를 써보겠습니다.

 

 

 

 

독일 서북부의 D도시에 위치한 공간디자인회사에서의 묘한 첫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 길,

휴대폰의 메일 알람에 떠있는 <면접 제의>를 발견하고 기분이 다시 좋아졌습니다.

 

이번엔 독일 중서부 F도시 근교에 위치한 공간디자인회사에서 온 연락이었습니다.

D도시의 회사와 마찬가지로 여러 크고 작은 전시/박람회 프로젝트들을 홈페이지 내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

디자인 적인 측면에서는 덜 마음에 들었으나, 역시 한국 회사를 클라이언트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회사 내 제 역할이 적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후에 면접이 잡혀있었기에 굳이 (다른 도시에 위치한) 호스텔을 옮길 필요 없이, 아침 일찍 기차역으로 향했습니다.

 

3시간가량 ICE를 타고 도착한 F도시는, 이전에 본 모습 그대로 냄새나고(..) 노숙자 많고(..) 여전히 좋지 않은 인상을 잔뜩 풍기고 있었습니다. 

이 도시가 과연 내가 살고 싶은 도시인가,를 잠깐 생각해보다가, 정작 서울역의 모습을 잘 모른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면접 후에 다시 생각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면접을 보러 갈 회사는 F도시 중앙역에서 S반을 타고 40분가량 남동쪽으로 가야 하는 근교 도시에 위치해있었습니다.

S반을 타고 가며 보이는 한가한 풍경을 보며, '아, 이렇게 외진 곳이라 지원하는 사람이 별로 없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포트폴리오에 자신이 있었지만, 첫 면접 이후로 '언어(독일어)가 완벽하지 않은 외국인을 부르는 데엔 이유가 있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시간 가량 일찍 도착한 소도시마을은 조용했습니다. 걷는 동안 할머니, 할아버지 몇 분을 마주쳤습니다.

배가 고팠기에 레스토랑을 찾아볼까 했지만, 딱히 검색되는 곳도 없고, 걷다 걷다 카페 겸 빵집에 들어섰습니다.

포트폴리오 발표를 준비하고, 면접에 나올만한 예상 질문들과 답변을 생각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지요.

 

순전히 구글 지도에 의지해 찾은 회사는 1층에 상점, 2,3층엔 집이 위치할 것 같은 건물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회사에 대한 첫인상은 D도시 회사와 격한 차이를 두고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고 "Ich bin hier für mein Bewerbungsgespräch"라 말하자 갈색머리의 남자 직원이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가정집으로 계획되었던 것 같은 건물을 살짝 개조해 사무실로 쓰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슬쩍 열린 문 사이로 열심히 클릭과 엔터를 반복하는 직원들이 보였습니다. 아마도 캐드를 치는 중이었겠지요.

 

두 번째 면접은 대표의 개인 사무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책상 너머 자기 자리에 앉아있는 대표에게, 독일어로 자기소개를 한 후, 태블릿에 담아놓은 포트폴리오를 독일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발표했습니다.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사사무소에서 일하다가, 전시 프로젝트로 옮겨간 것을 특이하다고 평가받았습니다.

 

가장 먼저 나온 질문은 "왜 독일에 왔는가"였습니다.

'독일어가 끌려서', 라는 대답에 농담을 섞어서 '맥주가 물보다 싼 나라라서, 람슈타인의 나라라서'라고 답했습니다.

 

대표의 회사 소개가 이어졌습니다.

생겨난 지 XX 년 된 회사이고, 파트너와 함께 차렸었다가 현재는 독립하였고, 직원수는 열명이 조금 넘고, 디자인도 하지만 요즘은 실시 쪽에 더 치우쳐져 있으며, 국제적으로 일하는 데 오랜 클라이언트들 중 한국 회사가 몇 있다.

한국인이 지원한 것을 보고 꼭 만나보고 싶었다.

 

 

 

대표의 한국 방문 경험이 4회나 된다고 하길래, "한국의 이미지가 어땠느냐" 물어보았습니다.

1) 한국은 술 마시기 좋은 나라다. 밤 새 문 닫지 않는 곳들이 많더라.

2) 한국 회사에는 언제든지 전화할 수 있어서 좋다. 시차에 상관없이 다 받더라.

3) 현대적인 도시의 모습(서울)이 마음에 들었다.

... 이 회사에서 일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이 너무 많아서 사람을 더 뽑을 수밖에 없다."는 대표의 말에, 어느 정도로 일이 많냐고 하자,

"지난 몇 주간 일 안 한 토요일이 언제인지 기억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세상에. 한국도 주 5일 근무인데, 유럽에서 주 6일 근무를 한단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이 회사는 안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일이 많은 대신, 포상도 그만큼 주어진다. 작년엔 베트남, 그 전 해엔 태국으로 단체여행을 다녀왔다."

야근수당, 주말 수당이 따로 있고, 회사 워크숍으로 아시아 여행을 간다는 점을 장점으로 말했습니다.

잠깐 혹하긴 했으나, 직원들이 어떤지도 모르는 마당에 이걸 무작정 장점으로 생각할 수는 없겠다 생각했고,

독일로 넘어와서까지 한국에서처럼 야근과 주말근무에 치어 살고 싶은가 생각해 봤을 때,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한국 회사와 자주 일하는데, 한국어를 할 수 있는 내 편이 필요하다."

대표가 한국인을 뽑으려는 이유를 말했습니다. 한국인들과 만나서 일할 때에, 그들이 하는 한국말 중에 자신이 놓치는 것이 없는지, 자신에게 사기를 치려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 이 회사에서 일하면 안 되겠구나...

 

그래도 혹시나 월급 조건이 어마무지 좋다거나 하는 장점이 있을지 몰라서 얘기를 이어갔습니다.

"페이는 XXXX유로에, 야근수당 주말 수당 별도, 휴가는 30일" 대표가 먼저 말했습니다.

인터넷으로 미리 알아봤던 월급 액수에 비해 몇백 유로 높았습니다. 그래도 돈은 많이 주는구나...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AutoCAD, SketchUp으로, 따로 프로그램 때문에 고생할 일은 없겠거니 싶었고,

월급이 높으니 세금 많이 떼는 독일에서도 저축이 가능하겠다, 싶었지만...

다시 S반을 타고, 기차 3시간을 타고 돌아가는 도중 생각하는 내내 단점이 장점보다 많다고 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F도시의 중앙역이 준 지저분한 이미지, 작은 마을에선 할머니 할아버지들 밖에 마주치지 못한 점,

번번한 레스토랑 하나 주변에 없는 점(지금 회사에서도 점심을 나가서 먹지는 않습니다만...),

워라벨(Work-Life-Balance)이 잘 갖춰져 있을 줄 알았던 독일에서 주 6일 근무하며 야근에 절어야 하는 점,

독일회사에 고용된 한국인으로서 다른 한국인들이 하는 말을 엿듣고 상사에게 보고해야 하는 점,

한국인의 일하는 특성을 이미 알고 있는 상사가 내게도 그런 점을 바랄지 모르는 점 등등등,

이번 주 중으로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 좋은 사람 뽑길 바란다." 메일을 우선 보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다른 한국인이 이 덧(?)에 빠져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게 두 번의 좋지 않은 면접을 보는 사이, 구직사이트에 또 수많은 공고들이 올라왔습니다.

 

세상은 넓고, 회사는 많다. 어디 하나 내 자리는 있겠지.

 

수많은 회사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다니고 싶은 회사를 찾는 데 주력할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면접 이야기, 3편으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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